19세기 초에 북유럽의 최강대국이었던 덴마크가 2번의 전쟁에서 패하여 많은 영토를 빼앗기고, 나라가 피폐해져가던 때에 그룬트비라는 젊은 목회자가 나라를 위해 눈물 흘려가며 기도하다가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학3:2)말씀을 만나고, ‘하나님의 일이 부흥되어야, 나라의 일이 부흥된다’란 깨달음을 얻고 그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 말씀에 사람들의 영혼이 변화되고, 교회가 변화되기 시작하자 사회전체가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밖에서 잃은 땅, 안에서 찾자’는 운동이 일으켜 늪지대와 황무지를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무려 20년이 체 지나기 전에 나라를 온전히 회복하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올해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3‧1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임시정부를 수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3‧1운동에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민족대표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초대한국교회의 사람들은 신앙생활하는 것과 사회생활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영국이 많이 피폐해져 있을 때 찰스 웨슬리, 요한 웨슬리 형제가 신앙의 부흥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성서의 방법대로 살아보자’며 ‘Get more money, Save more money, Share(Give) more money’라며 성경적인 경제관을 외쳤습니다. 이 간단한 메시지가 영국사람들을 변화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고 나라의 부흥으로 이어졌습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왕들의 이야기를 읽어 보면 그 시대의 신앙의 수준과 나라의 흥망성쇠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찬양이 넘친 다윗시대 때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나라가 부흥되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영적으로 부흥할 때에는 나라가 흥하여 스바여왕이 보고 감탄할 정도였지만, 하나님을 떠나고 영적으로 쇠퇴해지자 그의 말년에 나라가 쇠퇴하게 되고, 결국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부흥을 위해서 어떤 영성이 필요할까요?
첫째, 성문(영문)밖으로 나아가는 영성이 필요합니다(히13:12-13). 예수님은 회당에 갇혀있지 않고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성문 밖에서 치욕과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민족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입니다. 초대한국교회의 사람들은 민족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지고 민족의 동반자, 민족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둘째, 찬송의 제사를 드리는 영성입니다(히13:15). 로버트 슐러(Robert Harold Schuller) 목사는 ‘개인의 영적인 수준은 찬송하는 것을 보면 안다’고 하였습니다. 찬송 하실 때 뜨겁고 힘입게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입술의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올 한 해 ‘예배’가 회복되고, ‘찬송’이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형석 교수님은 『백년을 살아보니』란 책에서 ‘입술의 열매에 어떠한지에 따라 삶이 따라가기 때문에 입술의 열매가 중요하다’는 말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로 찬송 드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선행과 나눔의 영성입니다(히13:16). 민족의 어려움 앞에 한국교회는 선행과 나눔에서 주저치 않았습니다. 초대 한국교회에는 예배 순서 중에 ‘나라와 이웃을 위한 헌금’순서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 헌금이 독립운동하는 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있었던 ‘국채보상운동’이 한 예입니다.
마지막으로, 바라는 영성입니다(히13:14). 기독교는 소망의 종교입니다. 이 땅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장차 올 것”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의 것은 버려야 합니다. 천국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미국에서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천국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잘 살줄 알았는데, 천국소망을 가진 믿는 사람들의 생활이 오히려 더 열심히 보람되게 산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올 한 해 이렇게 천국을 소망하는 영성이 우리의 영성이 되어 ‘영적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가 되어 살아가는 한 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