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기사 2019.06.23 20:26 조회 수 : 539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마태복음 5:43-48
들어가는 말
오백 년 묵은 씨앗을 심어서 거두었다는 소담한 꽃들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가도 속알이 썩지 않으면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생명의 근본은 ‘사랑’이라는 말인데, 예수님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12:30-31).
사랑을 명령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어머니와 청춘남녀들의 사랑도 내 자식, 내 애인에 국한되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감성적인 ‘자연발생적 사랑’입니다. 하지만 살다보면 꼴 보기 싫은 사람도 만나게 되고, 아주 원수처럼 지내는 사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자기 좋은 사람은 좋아하고, 싫은 사람은 싫어하며 사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오히려 불편합니다. 내 속에 미움이 있는데 어떻게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절)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스승이 제자에게 내리는 명령형이기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다면 이 명령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한술 더 떠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감정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감정에 바탕을 둔 사랑의 한계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6-47절)라고 지적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45절).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은 종종 우리에게 불편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쓸때와, 사랑 받을 자격이 없음에도 사랑받는 그 사람은 모두 새로운 존재로 비약할 수 있게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갈6:8)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들이느냐 아니야의 문제는 우리가 구원받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45절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들이 되기 위해서”라는 의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입니다. 예수님의 원수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심 같이 온전해야 하며(5:48), 하나님의 자비하심 같이 자비해야 하며(눅 6:36),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같이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마 18:33). 하나님의 형상은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요 인격이기 때문에, 원수 사랑은 하나님을 닮는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46-47절은 소위 ‘끼리 끼리의 사랑’ 또는 ‘주고 받기식의 사랑’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특히 47절의 형제는 마태복음에서 공동체내의 성도를 가리키는데,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은 신앙공동체 밖의 사람까지도 포함하며, 44절의 ‘핍박하는 자’, 46, 47절의 세리와 이방인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경멸하는 대상인 세리와 이방인의 윤리 수준에 그치고 만다면 어찌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인 원수 사랑
예수님의 제자는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48절)에 이르러야 합니다. ‘온전함’이란, 예수님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율법 준수를 통한 율법의 완성이란 뜻입니다. 그 중에서도 원수 사랑이 율법의 핵심이요,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바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며(마 22:40), 이웃 사랑은 원수 사랑까지 확대된 사랑(마 5:43~48)입니다. 19장에서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19:25) 라며 두려움과 무력감에 사로잡힌 반응을 보입니다. 제자들이 듣기에 예수님의 요구는, 너무나 터무니 없고, 희망적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고 해답을 주십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를 격려해주실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사랑이 날마다 조금씩 자라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