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기사 2019.07.06 19:27 조회 수 : 380
말씀이 머물 자리를
요한복음 8:31-38
Ⅰ. 예수를 믿은이들에게 (31절)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출신을 알 수 없을 것이며, 모르는 데서부터 갑자기 등장할 것이라는 메시야상(像)을 기준으로 갈릴리에서 온 청년 예수를 비판했다(요 7:27).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났다”(요 7:28)고 응대하셨고, 이어서 8장에서 예수님은 “나를 따라 동행하는 자가 참된 내 제자로서 자유를 얻을 것이며, 예수님이 가시는 곳으로 따라 갈 수 있어야 한다”(요 8:12, 29)고 말씀하신다.
본문 31절의 ‘믿은 유대인’과의 대화를 소개하고 있다. 완료분사 형태인 ‘믿은’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그들은 지금 막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을 예수님 곁에 머물렀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주님은 그들에게 제자됨의 의미를 가르치신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라는 말씀으로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거하면’(메이네테)이라는 말은 광야에서 성막을 향하여 텐트를 치고 살았던 모습을 상기시켜준다. 말씀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 말씀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Ⅱ. 진리 안에서 자유를 (32절)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면 결국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데, 이 진리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과 가르침 자체를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자유로움이다. 예수가 우리 삶에 들어오면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 그리고 주님은 진리를 인하여 환난을 겪게 될 제자들에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라고 말씀하신다. 더욱이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앞에 둔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세력 앞에서도 짓눌리지 않는 영혼만이 진정 자유할 수 있는 말이다. 그를 위협하고, 감옥에 가두고, 죽일 수는 있겠지만 굴복시킬 수는 없다.
Ⅲ. 얽매여 있는 사람들 (33~36절)
그러나 이런 선포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은 좀 다르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33)는 말로 유대인으로서의 종교적, 민족적 자긍심에 상처를 입었음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은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34)라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 오히려 죄의 근원임을 말씀하신다. 바울도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갈 4:8-9)라고 지적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인으로 부름받아,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건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도한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 한동안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부자 되세요.”라는 덕담도 그리스도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위험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라고 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많은 재물이 아니라, 자족하는 마음이다. 소유에 대한 욕망은 이성이나 양심을 마비시켜서 종노릇이 시작되게 한다. 예수 믿는다고 만사형통하는 것도 아니며, 잘 믿는데도 실패하기도 하고, 신앙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문제가 많지만 세속적인 성공을 거두는 이도 있다. 이러한 신앙적 딜레마에 대해서 전도서는 “하나님이...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라고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깨달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거두는 성공보다 하나님을 향해서 거두는 실패를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하며, 하나님을 등지고 누리는 건강보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면서 겪는 연약함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Ⅳ. 말씀이 머물 자리를 마련하라(37절)
적대적인 태도를 가진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사람의 마음이 자기로 가득 차 있다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도 없고, 스스로를 바꿀 수도 없다. 마음이 굳어져 가는 것이다. 에스겔서에서도 하나님은 백성들의 굳어진 마음을 제거하고, 새 살과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겔 36:26)고 하셨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참 뼈저리게 다가온다. 신앙생활이란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하는 것이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시간을 구분하여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까닭은 정신의 굳어짐을 막기 원해서이다. 하나님을 향한 열린 기도와 이웃을 향한 열린 사귐을 통한 마음비우기는 진리의 말씀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를 자유하게 하실 수 있도록 여백을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