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기사 2019.09.15 18:26 조회 수 : 347
세상 근심, 하늘 근심
고후 7:5~12,16
각 사람마다 독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듯이 성경의 인물들도 각자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다윗왕이라면 항상 찬양하는 이미지가 떠올라 다윗기념관에 상징이 ‘하프’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어떤 이미지일까요? 유럽의 성당 앞에 있는 사도바울의 조각상을 보면 말씀과 검을 함께 들고 있는 이미지로 항상 강한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 바울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늘 말씀에 보면 ‘후회, 근심, 애통’(5,8절)하고 있는 바울의 모습을 보입니다. 왜 바울이 그렇게 ‘근심’하고 있는지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린도 도시는 아프로디테라는 여신을 섬기는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아덴을 거쳐서 고린도로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말씀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보통 사도바울은 한 곳에서 2~3개월정도만 머물렀는데 고린도는 무려 1년6개월 정도를 머물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고린도를 떠난 후 에베소에 머물 때에 고린도교회에 파당이 생기고, 세속문화가 들어와 여러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고린도전서)를 보냈습니가. 그런데도 변화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 특별히 자신의 제자 ‘디도’를 보내면서 강하게 책망하는 편지를 보내었습니다. 그 편지를 보낸 것이 사도바울은 계속 마음에 걸려서 ‘근심’하고 ‘후회’하였다고 합니다(8절).
이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걱정되어 ‘근심’하며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가는 중간 지점쯤 되는 마게도냐란 곳에서 가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고 기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5-7절). 그 소식은 사도바울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회개하는 ‘근심운동’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9절)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그 근심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10절)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근심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하게 합니다(10절). 다윗과 사울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윗과 사울이 범죄했을 때에 나단 선지자의 지적에 다윗은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고 회개하였지만,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의 지적에 핑계와 변명만 대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근심은 회개함에 이른 신령한 하늘 근심이요, 사울의 근심은 자신을 위한 세상 근심이었습니다. 하늘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고, 세상 근심은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10절).
구원은 십자가 구속의 은혜로 똑같이 받으나, 구원에도 격식이 있습니다. 구원에도 부끄럼이 없는 구원과 부끄럼이 있는 구원이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 예수 더 잘 믿을걸, 더 충성 봉사할 걸’ 하면서 후회하며 받는 구원은 부끄러운 구원입니다. ‘하늘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도록 우리를 더 간절하게, 두렵게, 사모하게, 열심있게 합니다(11절). 마지막으로 사도바울은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16절)고 고백 합니다. 여기서 바울의 신뢰는 ‘하나님의 신뢰’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를 보면서 사도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잠깐 ‘근심’하고 있다가 고린도교회의 일어난 ‘근심운동’으로 회개하였다는 소식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도바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며 고린도교회 교인들을 ‘신뢰’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가을로 갑니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적인 ‘하늘 근심’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위한 ‘하늘 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신뢰를 얻는 상태로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