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기사 2019.02.03 12:34 조회 수 : 554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눅 18:35~43
『백세를 살아보니』의 저자 김형석 교수님이 목회자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자신은 학생을 사랑하니까 더 엄격하게 공부를 시켰다’고 하면서, 목회자들에게 ‘성도들에게도 믿음생활 잘 할 수 있도록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오늘날에는 인내, 참을성, 기다림이 부족하여 화를 잘 내고, 쉽게 포기하고, 절망하여 그리고 결국 자살해버리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편의점 삶’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앙생활도 ‘편의점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속에 여리고성의 한 맹인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에는 그 맹인의 이름이 ‘바디매오’로 나옵니다. 그 맹인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만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42절)란 말씀을 듣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맹인 바디매오의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듣는 믿음입니다. 맹인이 길가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에 대한 간절한 믿음의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의 시작은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롬10:17). 그가 길가에 앉아서 온갖 이야기를 귀동냥으로 듣게 되지만 지금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둘째, 참된 신앙고백의 믿음입니다. 맹인이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8절)라고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즉 맹인은 예수를 메시아, 구세주로 고백하고 믿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셋째, 더욱 소리 지르는 믿음입니다. 맹인의 외침에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으니까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39절)라며 더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누가복음 18장을 시작하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 하시고 여리고로 올라가셨는데 말씀하신대로 끈질기게 기도하듯이 더욱 크게 부르짖는 믿음을 가진 맹인을 만난 것입니다.
넷째, 보기를 원하는 믿음입니다. 맹인의 부르짖음을 들은 예수님께서 그를 데려오라고 하시고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41절)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그는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41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길가에 하루 종일 앉아서 구한 것이 사람에게 구한 것이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께 자신이 필요한 ‘돈’을 구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것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맹인에게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42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믿음은 주님 보시기에 어떠한 믿음일까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발을 쓰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행14:9) 큰 소리로 일어서라 할 때 그가 일어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감동케 하는 맹인 바디매오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마태와 마가복음서와는 다르게 누가복음에서는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43절)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의 역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맹인이 고침 받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사마리아의 열 명의 나병환자가 고침을 받는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온 자가 한 명 뿐이었습니다(눅17:11-19). 예수님께서 그에게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눅17: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올 한 해 이렇게 예수님을 감동케 하는 믿음을 가진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