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메이커 2020.03.29 20:22 조회 수 : 356
예배영상 - https://youtu.be/Gva71k9EHUY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 창50:15~21
삼월의 마지막 주일도 영상예배로 드리게 됩니다. 계속해서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고 영혼의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이기도 합니다. 교회력은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고난에 동참하는 40일간의 기간을 두고있고, 성경에서는 40이라는 숫자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주야로 40일간 비가 내렸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을 어렵고 힘든 생활을 견뎌내야 했으며, 예수님의 광야금식 기간 또한 40일이었습니다. 그래서 40이라는 숫자는 주로 고난과 시련과 인내 그리고 그 기간을 지나서 마침내 승리로 나아가는 그 기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서 그 어느 해보다도 고난과 시련의 40일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고 우리 위하여 고난 받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40여일쯤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전의 출입이 제한될 때에 담임목사로서 결단하고 교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강제적으로라도 고난에 참여케 하시는구나 그렇게 묵상을 해봅니다.
성경을 읽는 방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중심 메시지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읽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경을 읽을 때에 ‘구약’과 ‘신약’으로 나눌 수 있고, 예수님 스스로도 이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더 나아가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이 말씀은 성경의 기록 목적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을 믿었을 때에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된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실 예수님을 예표하는 모형을 이야기하는 것이 구약이며, 오신 예수님에 대한 묘사가 신약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빼 놓으면 성경의 이야기가 안 되는 거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을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오늘 우리가 본문에서 본 요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요셉의 이야기를 읽다가 보면 참으로 예수님과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그 말씀을 찾아가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에 의하여 은 30에 팔리듯이 요셉은 사랑하고 사랑받아야할 형제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은 20에 팔려가게 됩니다. 그 애굽에 갔을 때에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앞두고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실 때에 사탄 마귀의 유혹을 받습니다. 물리치고 이겼을 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는 것과 같이, 요셉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에 두 강도가 있었던 것처럼, 요셉이 감옥에 갇혔을 때에 술 맡은 관원과 떡 맡은 관원이 함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이기시고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요셉도 총리대신의 자리에 올라서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야 말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습니다.
I. 두려워하지 마십시오.(19,21절)
오늘 성경 본문에서 형들이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라고 했을 때, 요셉은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답을 합니다. 형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죄를 짓거나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버지가 죽고 장례가 끝났을 때, 자신들의 잘못에 대하여 보복당할 것이 두려웠던 형들은, 사람을 보내서 요셉 앞에 엎드려서 이야기하게 합니다.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17절)
그러나 요셉의 대답은,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19절)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서 불안해하는 형제들을 요셉은 이미 용서했습니다. 그 형들이 애굽에 왔을 때에 서로 부둥켜 안고 울면서 용서하고 용서받았더라는 말씀입니다. 요셉을 통하여서 그 어떤 허물이나 죄도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봅니다. 사순절에 우리가 깊이 묵상하고 붙들어야 할 은혜의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서 죽으신 것이며,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이것을 믿는 자에게 더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용서와 속죄함의 은혜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요셉이 왜 울면서 “두려워하지 마소서”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미 그 형들을 다 용서했고, 깨끗하게 지웠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들은 아직도 거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그 범죄함이 아직 앙금으로 남아있을 것이며, 그래서 요셉에게 다시 어려움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서, 자기들의 범죄에 대하여서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더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이 사순절에 우리가 새롭게 붙들어야 할 주제가 이것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는데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지시고 그 값을 지불하심으로 용서하시고 우리는 용서 받았다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주제라는 말씀입니다.
엡 1:7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고 되어 있습니다. 과거형으로 선포된 이 말씀은, 우리 죄가 주님 안에서 은혜로 깨끗하게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붙들지 못함으로 인해서 구원파나 신천지 같은 이상한 사람들에 의해서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미 당신들을 용서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신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그 마음을 요셉이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조건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가 와도 “나는 주님으로부터 용서 받았어. 주님께서 나에게 그 값을 지불해 주시고 그래서 우리는 구원 받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어!”라는 확신입니다.
돌아가신 옥한음 목사님이 남기신 책 가운데 “이보다 좋은 복이 없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이보다 더 좋은 복이 없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죄 씻음 받은 것, 용서 받은 것, 구원 받은 것.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성도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있고 부유한 사람이 있지만,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붙들고 사는 사람은 용서 죄 사함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은혜가 넘치는 그것이 부유한 신앙생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부자라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죄 용서에 대한 확신이 없고, 그래서 죄에 대하여 늘 두려움에 쫓기듯 살면서, 신앙생활이 메마르고 건조한 사람도 있다는 말입니다.
다윗도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 저를 버려두지 마십시오. 내 영혼을 거지처럼 버려두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했는데, 요셉의 형들도 “용서해주십시오. 우리들이 악을 범하였나이다.”라고 엎드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요셉은 이미 용서했습니다. 주님은 이미 용서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사탄 마귀는 우리를 자꾸만 그것을 파냅니다. 십자가에 묻은 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우리를 정죄합니다. 죄에 대하여서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은혜에 감격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십니다(20절)
두 번째로 생각해야 될 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의 은혜를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20절의 말씀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0절)
요셉은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서 체험한 하나님을 “바꾸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며,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두고 보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주셨고 이 모든 악한 것들을 다 바꾸어서 선으로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팔린 것이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것이나 그 모든 것을 통하여서 그가 본 것은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서 모두 선이 되게 하셨고, 복이 되게 하셨으며, 은혜가 되게 하셨고, 그래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는 우리 삶을 바꾸는 은혜와 역사와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선하게 대하는데 악으로 갚는 것이 악마적인 것이라면, 선한 것은 선으로, 눈에는 눈으로 갚은 것이 율법적이고 인간적이라 할 수 있고, 악을 선으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적인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는 변화와 변혁의 힘이 있습니다. “New and better”(새로움과 나아짐)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나를 따르라. 지금부터는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부에서 제자가 되고, 창녀가 성녀가 되었습니다. 죄인된 우리를 주님께서 만나주시고 베풀어주시는 은혜로 인하여서 우리가 의인되게 하여 주시고, 악한 귀신에 눌렸던 사람을 해방시키사 주님을 증거하게 하여 주셨고,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주님 만남으로 인해서 그 나음을 입었습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인생관 가운데 하나가 “팔자소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팔자타령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 모든 것이 새로워지고 좋아지는 변화로 나아갈 수 있는 은혜와 힘과 축복이 주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요셉은 그 고난의 삶 가운데서 자신의 팔자를 타령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붙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기에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득죄할까?’라면서, 하나님을 의식하고 믿음으로 마침내 그 모든 것을 바꾸어서 영광되고 선이 되게 하시고 축복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줄로 믿습니다. 아멘
지금 우리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서 정말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양호한 편이라고 합니다. 세계가 한국의 것을 배우려고 하고 있으며, 힘든 가운데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저의 목회 노트에도 “장하다 대구야. 잘 견뎠다 대구야”라고 써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어쨌든 이 모든 것을 통하여서 선으로 바꾸어 주시고 새로운 은혜의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뜻이 은혜가 여기에도 담겨 있는 줄 믿습니다. 아멘.
영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영적인 적이요 적그리스도적인 일을 서슴지 않았던 악한 바이러스 신천지의 정체가 이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서 속속들이 우리 앞에 벌거벗고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부를 비롯해서 대구 시장도 쓰러져가면서까지 한 마음이 되어서 감당을 해서 이만큼 방어해낸 것도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중세 때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을 줄여버린 정말 끔찍한 흑사병(페스트)사태가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기록을 보면 사람들이 시골로 도망을 가고 피난을 가고 그리고 거기에서 살고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복카치오의 데카메론 같은 문학작품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의학과 과학의 발전도 가져옵니다. 사람 귀한 줄도 알게되고, 인권에 대한 의식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으로까지 이어지고, 그렇게 역사가들은 평가합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이 기간에도 우리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려(20절)
마지막으로 요셉이 형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1절)
요셉의 모습을 통하여 주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요셉은 형들이 나를 팔았기 때문에 내가 애굽에 와서 총리대신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가족을 구원하고 애굽을 구원했습니다. 칠년 흉년에 여러 곳에서 양식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었고,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하라고 여기에 보내신 것입니다. 형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통하여서 나를 이리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많은 백성들을 구원하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에 보내어서 많은 백성을 구원하게 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옥한음목사님은 “여러분이 구원의 은혜를 붙들고 감사하면서 구원의 ‘구’자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영혼들. 세상에 어려움과 힘듦이 있어도 능히 그것으로 인하여서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사람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마지막으로 요셉의 말을 좀 더 들어보고자 합니다.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한 요셉의 행동은,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21절)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형들은 죄에 대한 두려움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실존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야기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주님이 떠나실 때 제자들의 마음은 영적인 공황상태였습니다. 주님 우리 어떻게 하라고요. 그때 주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시고 또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리라. 보혜사를 보내 주리라. 세상 끝날까지 그가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위로자 되어 주시리라. 파라클레토스, 옆에서 도우시는 도움 자가 되어 주리라.(할렐루야)
성령님의 위로와 격려와 더불어서 이 어려움의 시기를 잘 이겨내시기를 오늘 말씀의 제목을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도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죄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는 극복했습니다. 주님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악하고 힘든 일이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붙드는 하나님은 그것을 바꾸사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이 되게 하십니다. 결국 승리케 하여 주실 것입니다.(아멘)
주님 우리에게 약속하여 주고 계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책임질게 내가 너희와 함께 나아갈게. 이 믿음으로써 이 사순절을 그리고 마침내 저 부활절기까지 이루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